전면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어서 안된다면서. 근데 왜 부자 동네만 수해복구 하고 빈민들은 생까는데? 복구 실무는 구청 담당이니까 시장은 지지기반인 부자동네 가서 삽들고 사진 찍으면 끝이란 거란 거냐? 공무원들 다 나가서 복구 지원하라는 것도 부자동네 가라는 뜻이었나?
부자급식이라서 끝끝내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겠다면, 수해복구도 부자지원은 못하겠다고 거부하고 몽땅 구룡마을에만 지원해라. 그럼 진심으로 존경해주마. 당신을 오해했다고 눈물 흘리며 사죄도 하마.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겠지? 당신은 적어도 복지 문제에선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성남 구시가지의 30평대 대단지 아파트. 대체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그 중에서도 나는 마눌님과의 수입을 합하면 아마 손에 꼽을 정도로 고소득자일 것이다. 경사로에 있는 이 아파트 바로 위에 우리 큰놈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다.
그 초등학교 위로는 작은 평수의 아주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볕도 들지 않는 동네가 있다. 처가도 그 동네에 있어 자주 오가며, 마눌님이 성인이 될때까지 자랐던 곳이라 안면있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이 동네 사람들의 평균 월 수입은 기껏해야 200만원 안팎밖에 안될 것이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100만원 이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네와, 내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는 모두 아이들을 그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낸다. 그래서 큰아들의 반에는 그래도 좀 사는 아이들과 영 못사는 아이들이 거의 반반쯤 섞여 있다. 아들넘의 반에는 아주 극단적인 정도는 아니겠지만 절대로 쉽게 넘어설 수 없을 정도의 큰 빈부의 격차가 있다.
정말로 다행히도, 작년 연말에 경기도에서는 극적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통과되어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에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 사실 그게 난에겐 별 대단한 돈은 아니어서 지원 해줘도 안해줘도 그만이지만, 그 얼마 안되는 돈을 (아마도 그 초등학교 학부모 중에서 최고소득자 순위에 들어갈) 우리집에까지 지원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그걸로 한달 담배값을 하려는 것도 술한잔 더 먹으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큰아들의 친구들이 단지 부모가 돈을 적게 번다는 이유로 내 아들에게 꿀리는 것이 너무나 싫다. 반대로 내 아들이 아빠가 좀 더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위세 떠는 것은 더욱 더 싫다. 나중에, 더 크고 나서 아주 나중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겨우 세상을 엿보고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생들일 뿐인 애들에게 돈이 힘이고 깡패라서 그걸 못가지면 비참해지고 가지면 짓밟고 선다는 추악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너무 참혹한 일이다.
...
마눌님과 내가 직장을 다니는 동안 장모님이 우리 애들을 봐주셨는데, 처남과 처제네 조카들이 사정이 더 급하게 되어 몇주정도 전부터 애들을 봐줄 아줌마를 구했다. 1주일쯤 전에 딱 마음에 드는 아줌마를 만났다. 멀지도 않은, 우리 아파트 위의 그 좀 덜 사는 동네에 집이 있어 서로 너무나 좋고, 이 일로 벌어 홀로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도 씩씩한 인상이 너무나 좋았다. 많은 액수가 아닌데도 그 액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좋았다.
바로 며칠 전에서야, 우연히 그집 작은 아들이 우리 큰놈과 같은 학교이고(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로 옆반이며, 같이 모여서 장난질을 치고 다니는 아주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작은, 어쩌면 아주 클 수도 있는 숙제가 하나 생겼다. 그집 작은아들, 아니 우리 큰놈의 친한 친구가 엄마를 닮아 돈좀 없어도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배려' 해주는 것. 그 배려는 돈일 수도, 말 몇마디일 수도, 혹은 조용히 숨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배려의 얼굴은 아주 여러 형태이지만 어떤 것이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배려로 인해 오히려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도 자라면서 참 지지리도 가난했다. 난 그걸 알기는 했지만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자랐는데, 그건 내 주위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몇백원이 없어서 준비물을 못사갔을 때 가난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다른 애들처럼 크게 야단치지 않았고, 주위에서 학용품 등을 사서 쥐어주는 분들도 적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내가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뼈빠지게 일했다. 그 많은 배려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인가.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이란 이슈는, 그 또래의 애가 없는 더 젊은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일테고, 또 많은 분들은 애가 있어도 그냥 돈 몇푼의 일이니까 하든말든 무관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마눌님에겐, 그리고 우리 큰놈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더욱이 그 엄마에게, 돈 몇십만원으로는 도저히 따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너무나 큰 의미가 있다. 너희 둘은 평등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믿음이 수없이 깨지는 아픈 날이 올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뭔가 배려를 해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 초등학생 시절은 현실의 비참함을 겪을 나이가 아닌, 그냥 행복한 꿈만을 꿔야 할 아름다운 시절이다.
그 초등학교 위로는 작은 평수의 아주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볕도 들지 않는 동네가 있다. 처가도 그 동네에 있어 자주 오가며, 마눌님이 성인이 될때까지 자랐던 곳이라 안면있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이 동네 사람들의 평균 월 수입은 기껏해야 200만원 안팎밖에 안될 것이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100만원 이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네와, 내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는 모두 아이들을 그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낸다. 그래서 큰아들의 반에는 그래도 좀 사는 아이들과 영 못사는 아이들이 거의 반반쯤 섞여 있다. 아들넘의 반에는 아주 극단적인 정도는 아니겠지만 절대로 쉽게 넘어설 수 없을 정도의 큰 빈부의 격차가 있다.
정말로 다행히도, 작년 연말에 경기도에서는 극적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통과되어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에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 사실 그게 난에겐 별 대단한 돈은 아니어서 지원 해줘도 안해줘도 그만이지만, 그 얼마 안되는 돈을 (아마도 그 초등학교 학부모 중에서 최고소득자 순위에 들어갈) 우리집에까지 지원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그걸로 한달 담배값을 하려는 것도 술한잔 더 먹으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큰아들의 친구들이 단지 부모가 돈을 적게 번다는 이유로 내 아들에게 꿀리는 것이 너무나 싫다. 반대로 내 아들이 아빠가 좀 더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위세 떠는 것은 더욱 더 싫다. 나중에, 더 크고 나서 아주 나중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겨우 세상을 엿보고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생들일 뿐인 애들에게 돈이 힘이고 깡패라서 그걸 못가지면 비참해지고 가지면 짓밟고 선다는 추악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너무 참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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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님과 내가 직장을 다니는 동안 장모님이 우리 애들을 봐주셨는데, 처남과 처제네 조카들이 사정이 더 급하게 되어 몇주정도 전부터 애들을 봐줄 아줌마를 구했다. 1주일쯤 전에 딱 마음에 드는 아줌마를 만났다. 멀지도 않은, 우리 아파트 위의 그 좀 덜 사는 동네에 집이 있어 서로 너무나 좋고, 이 일로 벌어 홀로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도 씩씩한 인상이 너무나 좋았다. 많은 액수가 아닌데도 그 액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좋았다.
바로 며칠 전에서야, 우연히 그집 작은 아들이 우리 큰놈과 같은 학교이고(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로 옆반이며, 같이 모여서 장난질을 치고 다니는 아주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작은, 어쩌면 아주 클 수도 있는 숙제가 하나 생겼다. 그집 작은아들, 아니 우리 큰놈의 친한 친구가 엄마를 닮아 돈좀 없어도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배려' 해주는 것. 그 배려는 돈일 수도, 말 몇마디일 수도, 혹은 조용히 숨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배려의 얼굴은 아주 여러 형태이지만 어떤 것이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배려로 인해 오히려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도 자라면서 참 지지리도 가난했다. 난 그걸 알기는 했지만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자랐는데, 그건 내 주위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몇백원이 없어서 준비물을 못사갔을 때 가난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다른 애들처럼 크게 야단치지 않았고, 주위에서 학용품 등을 사서 쥐어주는 분들도 적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내가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뼈빠지게 일했다. 그 많은 배려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인가.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이란 이슈는, 그 또래의 애가 없는 더 젊은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일테고, 또 많은 분들은 애가 있어도 그냥 돈 몇푼의 일이니까 하든말든 무관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마눌님에겐, 그리고 우리 큰놈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더욱이 그 엄마에게, 돈 몇십만원으로는 도저히 따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너무나 큰 의미가 있다. 너희 둘은 평등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믿음이 수없이 깨지는 아픈 날이 올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내가 뭔가 배려를 해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 초등학생 시절은 현실의 비참함을 겪을 나이가 아닌, 그냥 행복한 꿈만을 꿔야 할 아름다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