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담배 사러 나갔던 길. 신호가 아직 빨간불인 횡단보도에 거의 다달았을 때쯤,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건너편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뛰어서 건너오는 모습을 봤다. 동시에 이쪽편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좀 더 어린 여자아이가 그걸 보고 꿈찔 했다. '나도 그냥 건널까' 그러는 고민이 내 눈에 보였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좌우로 차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찻길을 앞에 두고 꼼짝도 하지 않고 똑바로 섰다. 좀 우습게 보일 정도로 우뚝. 그러자 그 여자아이도 동요를 멈추고 가만히 서서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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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쯤 전 차를 몰고 어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좁은 왕복2차선 길에서, 저 앞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가 들어왔다. 평소엔 나도 잘 지키지 않던 신호라 그냥 지나치려다, 반대편에서 마티즈 한대가 먼저 정지선 앞에 서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줄줄이 차들이 몇대 더 섰는데, 내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쪽 뒤의 차들이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칠까 아니면 횡단보도에 설까 잠깐 고민을 하던 난, 반대 차선에서 빵빵거리는 차들을 보고 정지선 앞에 딱 섰다. 빵빵거리던 그 차들은, 반대편 차선에서도 덩치 큰 차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정지하는 것을 보고서야 빵빵거리기를 멈추고 조용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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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양심을 지키기는 어려울 때가 많지만 남의 양심을 지켜주는 것은 의외로 쉽다.
또, 나의 양심을 망가뜨리기보다 남의 양심을 망가뜨리는 것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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