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박범용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제가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인데, 박범용씨가 먼저 글을 쓰니 제가 반박글의 형식으로 제 생각을 표명할 수 있게 되었네요.
박범용씨는 이미 아실 것 같지만, 오늘 오전에 경찰서에 출석해서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명예훼손을 개인간의 민사소송으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일부 있던데, 명예훼손은 국가의 처벌이 전제되는 형사법상의 범죄이기 때문에 제 신분도 명확하게 '피의자'였습니다. 박범용씨의 논지도 담당 경찰관의 조사 질문을 통해 충분히 전달받았습니다.
댓글을 쓰신 분 말씀처럼, 인터넷 게시판에선 말을 많이 한 사람이 불리합니다. 볼랜드포럼이라는 커뮤니티 회장으로서, 그리고 커뮤니티 연합인 한국 델파이 연합의 전 총무로서 당연히 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많은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제가 무조건 불리하죠. 박범용씨는 민감한 사안 대부분에 대해 거의 언급 자체를 안했기 때문에 충분히 유리하십니다. 결국 제가 벌금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더 크고, 일단 벌금형을 받으면 그것을 근거로 데브기어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적어도 수천만원 이상을 물어주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쓴 글들 중 일부는 지나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사과드립니다. 굳이 고소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제게 이의를 제기하기만 했으면 언제든 사과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나친 부분은, 제가 지난 14년 동안 볼랜드포럼, 델마당,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서 델파이 혹은 C++빌더와 관련해서 써온 거의 1만개에 가까운 글들 중 8개였습니다.박범용씨가 범죄 증거로서 제출한 8개의 글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박범용씨가 홀로 피땀흘려 일군 듯이 주장하신 대단하신 사업은, 제 나머지 9992개의 글로부터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고, 더욱이 박범용씨 혼자서는 2년이나 제자리만 맴돌던 회사가 번듯한 규모를 갖추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저와의 동업 덕분이었다는 점도 결코 부인하시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로, 1만여개의 글들 중 그 8개의 글을 찾아 몇몇 눈에 밟히는 부분들을 찍어서 저를 수사기관에 범인으로 신고하셨습니다.
전 지난 며칠간 죽을 정도의 고민을 했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혼자 술 먹다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번 했고, 그 반대로 박범용씨를 찾아가 무릎꿇고 빌어볼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전 담배 꽁초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면서 철저히 법과 도덕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고, 커뮤니티 운영 과정에서도 단 한푼의 이익도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제 사비도 수없이 썼으며, 데브기어를 떠날 때는 제 모든 노력과 열정을 다해 키운 회사의 40%나 되는 지분을 헐값에 다 넘기고 나왔습니다. 이런 제가 범법자로서 형사 피의자로 경찰관 앞에 앉아 조사를 받게 되니, 그 형량의 경중을 떠나 조금의 과장도 없이 죽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편법에 익숙하고 세상이란 이기는 놈이 정의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쓰러질 정도의 격심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 끝이 어디든 법의 심판을 받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도 유죄로 빨간줄 긋고 싶지 않습니다만, 박범용씨가 수사기관에 저의 수많은 공헌은 싹 지워버리고 티끌만한 과오를 찾아 태산같이 과장해서 표현해서 고발한 내용을, 제가 그대로 시인하고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결심이 제가 절망과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게 해줬습니다.
100억을 주고 1만원을 훔쳐도 범죄인 것이 이 세상의 법률이라는 점 잘 압니다. 법정과 수사기관에서는 100억을 준 사실은 정상 참작은 될지 몰라도 유죄 사실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더욱이 저는 이젠 온전히 박범용씨 혼자만의 회사가 된 데브기어를 악의적으로 헐뜯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도, 박범용씨가 제가 쓴 1만여개의 글들 중에서 나머지를 모두 배제하고 골라낸 8개의 글에서는, 경찰과 검찰은 없는 악의와 고의성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박범용씨가 고소장에서 제 글들 중 제 말이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만 절묘하게 추출한 것은,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가격 문제의 논지에서 다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던 2007년 3월의 가격 인하 약속을 통째로 빼먹은 것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2007년의 약속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델파이/C++빌더 개발자들을 대신해서 델파이 커뮤니티 연합이 박범용씨에게서 다짐 받은 약속이었으며, 그 약속을 언급하지 않고는 가격에 대한 박범용씨의 그 어떤 주장도 무의미합니다. 물론 그 약속은 법률적인 계약 사항은 아니었으니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 박범용씨가 얼굴을 들고 가격에 대한 어떤 주장을 하려면, 가격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그 약속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닙니까?
주변에 박범용씨와 합의하라고 종용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제가 더 상처입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진심으로 저를 위해 조언해주는 것이란 점 너무도 잘 알고, 그분들의 고마운 뜻 가슴 깊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집센 저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박범용씨 입장에서 합의 과정에서 가격 인하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거나 그에 준하는 조건을 달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보이고, 10년 넘게 한국내 델파이/C++빌더 가격의 부당함을 주장해온 바로 제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겨우 범죄 혐의로부터 벗어난다면, 저는 물론 다른 누구도 앞으로 데브기어의 가격 문제에 대해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박범용씨가 저를 경찰에 고소한 고소장의 논지를 보면, 제가 박범용씨와 동업자로서 2년씩이나 함께 일하면서 데브기어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겨우 반박이 가능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만약 데브기어에서 박범용씨와 함께 일했던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면, 가격 문제에 대해 저처럼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가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되면, 과연 저처럼 반박이 가능하기나 했겠습니까.
제가 박범용씨의 논지를 반박했습니다만 그래도 유죄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 잘 압니다. 이 시대의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이란 무시무시한 법이죠. 일상 생활에서 잘 어울려 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뒤집어쓸 수 있는 것이 명예훼손죄입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할 때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벌금형을 받은 사례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도 저를 많이 만류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지난 10년간의 모든 고민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지난 며칠 동안에 하고도 결국은 끝까지 대항하기로 결심한 것은, 첫번째로 무엇보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이고, 두번째로 조금은 델파이 개발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적당히 합의하고 물러서게 된다면, 아무런 이익도 없이 신념 하나만으로 살아왔던 제 14년 동안의 노력이 고소장 하나로 단죄되는 것을 스스로 용인하는 셈이 되고 또한 제가 살아온 방식을 제가 스스로 부인하는 셈이 됩니다. 저로서는 질 것 같아도 끝까지 대항하는 것만이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제가 어떤 단죄를 받든간에 이 고소 건에 대해 절대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마도 약식명령으로 유죄가 떨어지겠지만 1, 2, 3심을 거쳐 헌법소원까지 가더라도 끝까지 대항할 것입니다. 그러더라도 결국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은 박범용씨에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시는 개발자분들께는 죄송합니다. 개발자분들 중 일부는 가격이야 어떻든 아무 상관없다는 입장인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격에 민감하고, 그것 때문에 구매 품의조차 올리지 못하고 제게 푸념하는 개발자들도 여러번 만나본 입장에서, 가격에 대한 이슈는 특별히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각을 세우는 악역을 저 대신 맡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기왕에 시작했던 일을 제가 계속 이끌고 온 것이고, 한국내 델파이/C++빌더 개발자들과 약속을 하고도 대답 한마디 없이 버티는 유통사가 있어서 더욱 저도 싫고 귀찮고 짜증나면서도 계속해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음을 조금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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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범용님께서 작성하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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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이상을 참아왔으나, 저와 회사가 고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온라인 상에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는 문제가 있으면 당사자가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해결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2. 회사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이야기"가 "논란"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3. 저희 전 직원은 몸과 마음을 다해 일을 하기에도 충분히 바쁩니다. 끝없을 진흙탕 싸움에 들어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4. 진흙탕싸움을 통해 저희 뿐만 아니라 박지훈씨가 다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고소를 하게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바가지다. 폭리이다". "땅집고 헤엄치기 장사다" "현금 리스크가 제로이다" "저작권, 출판권을 모두 주었다"...등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회사에 위해한 글을 올려오고 있습니다.
2. "이런 회사라면 더 존속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네요" 를 포함하여, 데브기어에 대한 위해 활동이 박지훈씨 스스로 자정될 기미가 전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3. 이미 온라인 상에서의 네거티브는 넘을 수 없는 수준이되었고 계속 쌓일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대학지원 사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에서 네이버에서 델파이 데브기어 도서 대학지원 이라고 입력하고 검색하면 "개정판 포기" "데브기어 답변" 등의 게시물이 Top 3 검색 결과에 포함되어 표시됩니다.
4. 명예회손도 문제이지만, 이에 더하여 고객 이탈을 편법 유도하는 행위 등 업무 방해에 대해 회사의 입장에서는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시비비는 커뮤니티를 시끄럽게 할 것이 아니라, 법률적으로 분명하고 정확히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2. 하지만, 이미 고소 자체에 대해 박지훈씨가 다시 글을 올리면서 이미 논란이 되었습니다.
3. 이에 저희가 할말이 없거나, 박지훈씨가 문제가 없어서 무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누구의 편이 되어달라는 글이 아니며, 이 글로 인해 커뮤니티에서 분란이나 상처받는 개발자가 생기지 않았으면하는 바램입니다. (그럴리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사족을 답니다)
역시 답변에 답변이 달리는 소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글로 입장 표명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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