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U+ 함께 했던 막장 프로젝트
개발자로 16년.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경험했지만,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막장 프로젝트,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프로젝트를 마쳤네요. 이 글은 내 스스로 이 프로젝트를 정리해 보기 위함입니다.
(이하 존칭어 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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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 담고 있던 회사는 2002년과 2004년에 파워콤과 데이콤에 무인통신국사의 환경 설비(정류기,UPS,기타 설비)를 원격 감시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납품한다. 한동안 각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잘 사용하였다. 2006~7년쯤이였던가, 펭귄이 날개짓하는 광고와 함께 LG텔레콤과 파워콤, 데이콤은 하나로 합병되어 LG U+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이 세 개의 회사가 통합 될 줄이야…~! )
3개 사에서 사용하던 통신망에 대한 망 감시 시스템의 통합 작업들이 진행되었다. 매년 연말이면 파워콤과 데이콤에 납품하였던 시스템의 통합에 대한 제안과 견적을 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차년도 예산을 잡기 위한 요청이였지만) 그 때마다 제안서와 견적을 제출했지만 매 번 나가리가 되기를 3~4년 정도를 반복하였다.
2011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LG에서는 그해 여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순환 정전때문이라고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남아서다.). 구매부서에서 네고가 심하네, 요구사항이 많네, 하며서 지지고 볶아대는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계약은 성사됐고 프로젝트는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먼저 LG U+의 요구 사항이 불분명했고(중간에 LG의 PM이 바뀌면서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담당자가 배정되었다.), 초기의 요구사항에 준해서 분석했던 시스템과는 너무도 다른, 회의를 거듭할수록 초현실적인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었다.
1,2월은 추가적인 개발 사항을 협의하다가 허송 새월했다. 4개월짜리 프로젝트에서 2개월을 요구 사항 명세서 가지고 옥신각신 하였으니 제대로 진행될 리가 만무했다. 그 와중에 Web쪽 개발 업체는 개발 대금 관련 지급 시기가 늦어진다고 땡깡 부리다가 결국 업체 변경~!. 중간에 들어온 업체는 뭘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얼떨결에 도장 찍고 들어왔다가 된통 당하게 된다. (Web 개발의 전체적인 업무범위를 설명해 줘야 할 나에게도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4개월 짜리 프로젝트에서 두달동안 추가적인 개발 사항을 놓고 서로 옥신 각신하는 와중에, 마대를 선 업체(을 업체, 개발조직이 없었음)는 갑의 온갖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라고 요구했고, 우리는 싸웠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2달이 흐른 후 LG쪽 요구 사항은 그대로 관철되었고 개발 범위는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갑절이나 늘어나 있었다.
어쨌든, 늘어난 개발 범위라도 집중해서 개발했더라면 일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으리라. 본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안에 두 개의 미니 프로젝트가 있었고, 이 두 개의 미니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업체가 서로 달랐다. 연관된 업체만 4~5개 업체가 되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프로젝트에 업체만 4~5가 붙어 있었고, 막바지에 Web 개발 업체는 다시 재하청까지 가서,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갑,을,병,정,무까지 가는 우리나라 SI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을쪽의 PM을 맞고 있었던 나는 직접 개발해야 하는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진행 조율, LG의 요구 사항들에 대한 업체간 업무 조율, 이러한 부분들이 힘들고 어려웠다. 개발 업무가 여러 업체에 분산되어 있었고, 업체간 협의나 조율도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일이 잘 진행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와 더불어 회사 자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LG 프로젝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발하였다. 이 내부 프로젝트에서 나는 시스템 디자인, 통제실 S/W 개발, 안드로이드 어플의 아웃소싱 개발에 대한 Coordinate를 하게 된다. LG 프로젝트의 PM과 자체 프로젝트의 설계, 개발, 아웃소싱에 대한 관리를 한꺼번에 진행하게 된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일 욕심이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살자, 그런 소박한 생각으로 살았다. SI가 잘 맞는 성격도 아니고 회사가 SI를 하는 회사도 아니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기에 내가 진행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진행 하였으나, 프로젝트를 2개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어쨌든, LG 쪽 개발과 회사 내부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다. 4개월 예정이던 LG 프로젝트는 연장 연장을 거듭해서 6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끝날 일정도 불투명했다. 6월말쯤 내가 개발해야할 부분을 완료하여 전국 서버에 Patch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너무 성급하게 Patch하였고, 일주일만에 Patch한 서버 프로그램이 일제히 다운되어 전국의 500여개 통신국사가 고립되는 장애를 만들어 냈다.(무인국사와의 통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고립되었다고 한다.). 대박 홈런을 친 것이다.
프로그램 다운됐던 원인은 6개월 후 중국 출장에서 알게 됐지만(C++ Builder의 ServerSocket의 Socket Handler Resource Release 문제였다.), 그 당시에는 장애 원인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장애 보고서를 쓰고, LG의 보고 라인에 끌려 다녀야 했고, 끝없는 Paper work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정작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결국, LG 와의 협의로 서버 프로그램을 두 개로 분할하기로 했고, 졸지에 추가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추가 개발자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 당근, 회사는 좋아할 수가 없었다.
당시, 회사는 LG 프로젝트에는 관심도 없었고, 회사 내 자체 프로젝트에 모든 리소스를 투입하고 있었다. 향후 10년의 먹거리를 결정할 만한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LG 프로젝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에게 미운 털이 박히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추가 개발자까지 투입해야 하는 상황, 좋아할 리가 없다. 이사는 말했다. “열심히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
어쩌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들 속에서 깊이 생각하고, 코드를 만들어 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했었는데, 너무 바빴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2개의 프로젝트 외에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유지 보수는 당근 같이 가는 것들이였으니…
괭장히 힘들었던 시기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데, 선임 이사는 끝임없이 비난하고, 일정 준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들을 쏟아 내었다. 부하 직원이 어려움에 처하면 같이 협력해서 해쳐 나가야 하건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의 말들 뿐이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이였으니 내가 수습을 해야 했다. 거의 6개월을 토,일 없이 Full로 일에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에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LG 프로젝트와 자체 프로젝트는 모두 4개월짜리 프로젝트였지만 거의 1년이 지나서 2012년 12월에 끝났다. 자질구래한 버그 Fix와 이런 저런 사항들을 모두 마치고 나니 12월이다. 4개월 짜리 프로젝트가 1년짜리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2012년 12월 31일부로 나는 회사를 떠났다.
프로젝트 실패했던 이유를 나름 정리해 본다.
- 요구 사항의 불명확 : 프로젝트의 초기에 LG에서도 이 프로젝트로 어디까지 해야할 지를 모르고 있었다. 투자 심의를 위해 작성한 시스템 구성안은 말 그대로 초현실적으로 디자인 되어 있었고, 투심의 문서와 현실의 괴리감을 담당자에 인식시키고, 현장 실사를 하면서 2달의 시간이 허비했다. LG의 복잡했던 상위 시스템과 인터페이스도 어디까지 할 것인 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도 없어서 회의를 진행하면서 만들어 가야 했다. 그러면서 개발 범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떠한 프로젝트에서건 프로젝트의 분명한 목표와 요구 사항이 명확하지 않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 리스크 관리 실패: 을쪽의 PM을 맞고 있었으나 너무 바빴다. 미리 위험 요인에 대한 대응을 했어야 하는데, 당장 앞에 있는 일처리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직감적으로 느끼는 위험 요소에 대하여 미리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일은 터지고 말았다. 여러 일들 중에 여러 업체들의 개발 항목들을 조절하는 일도 하나의 과제였으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
-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양(범위)에 대한 명확한 인식: 일 욕심이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자 그런 생각으로 살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열심히 일해서 될 분량이 아니었다. 다 소화시키지도 못할 일을 하겠다고 덤볐다가 내 몸을 망치는 바보 같은 일을 한 것이다. 자업자득. 일이 나를 잡아 먹은 꼴이다.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 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 나를 다치지 않게 하려면 꼭 필요한 것 같다.
프로젝트의 실패 요인이 어디 이 것만 있으랴. 마대를 섰던 업체의 무능, LG 쪽의 대책없는 요구사항들.. 그런 것들도 실패의 한 요인들이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PM을 맡았던 내가 잘못했던 부분들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고 정리해 본다.
회사를 떠나는 것이 비단 이런 이유에서만 일까? 일이야 힘든 그 순간이 지나면 그뿐 아닌가? 나의 선임 이사와는 10년을 일했지만, 일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차이가 났다. 특히나 협력업체를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일종의 하대랄까?) 화학적으로 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런 이유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LG 프로젝트가 결정적인 방아쇠를 당겼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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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나간 과거.
화나고, 열받고, 억울하고, 무한히 피곤했던 시간들을 기억의 저편에 묻고, 그 속에서 건져야 할 경험들, 교훈들을 가슴에 담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New Path Finder..
영화의 제목처럼, 40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어찌하리, 나의 운명이 이러하면 수고로이 그 길을 걸어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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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어 있었다. 말할 나위 없이 피곤했고, 정신적인 에너지가 바닥이 나 있었다. 지금은 몸과 마음의 회복 훈련 중… 거의 1년 동안 가족과 같이 있을 시간이 없었는데,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바닥난 체력을 회복하게 위해 매일 운동을 한다. 하루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계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비로서 느낀다. 회사를 다닐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 너무 바쁘고 지쳐서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해져 있었나 보다. 아침에 공원에 나가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계절을 느낀다.
책 제목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을 느끼며 소중한 백수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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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콤과 파워콤은 좀 나은 걸로 알고 있는데, LGT는 오래전부터 악명이 높죠. 예전 볼랜드포럼 회원분들 중 LGT 프로젝트하다가 심신 다 해치고 아예 업계를 떠난 분도 있습니다. (그분이 2005년인가에 다음 아고라에 신랄한 IT 업계 비관 글을 쓰셨던 분입니다) 그런 LGT가 그나마 좀 나은 두 회사를 합병해서 만들어진 게 LGU+이니 예전의 LGT 그대로일테죠.
너무 자책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시지는 마세요. 전부 꼼꼼이 읽어봤는데, 제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매니저 전담이 따로 없었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웹쪽 개발을 따로 하청을 줬고 또 갑쪽의 스펙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면 개발을 병행해야 하는 땅주인님이 PM을 절대로 맡아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그런 상황에 대해 땅주인님 스스로는 상당히 인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소속 회사에서는 전혀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었을 거 같고요.
핵심 인력 한두명이 시간과 정력을 다바쳐서 성공에 가깝게 끌고 갈 수 있는 프로젝트는 다른 모든 제반 환경이 모두 우호적이고 운이 좋을 때일 뿐이죠. 프로젝트 자체의 규모 혹은 코드의 양과는 무관하게, 상위 업체와 하위 업체가 모두 다 있는 상황이고 일은 안하고 중간에서 훈수질만 하는 업체까지 있는 상황이니, 연변이 좋든 술을 잘먹든 어떤 식으로든 결과적으로 상위 업체와 하위 업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관리자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고 보입니다.
그 회사를 나오신 것은 어쨌든 잘 하신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그 회사는 뛰어난 개발자 한명 박아놓고 회사에서 추가적인 투자 없이 그 개발자 한 사람의 정력만을 소모시켜 프로젝트를 통째로 때우려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이사라는 분은 '개발'과 '개발관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분으로 보이는데, 그런 관리자는 밑에서 일하기에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나오든지 회사내에서 싸우고 치받아서 힘을 쓰지 못하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죠.
어쨌든 참 어려운 경험 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시고 나면 후유증이 짧아도 몇달 길면 2, 3년도 갑니다. 경제적으로 좀 어려워지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심호흡하고 한 걸음 걷고 다시 심호흡하는 박자 정도로 쉬엄쉬엄 가야 합니다. 스스로 회복되었다는 게 느껴질 때까지요. 마님한테 쫓기다시피 생업에 나서는 허생처럼 급하게 다시 뛰어들었다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상을 입으실 지도 모릅니다. 쉬엄쉬엄 하시면서 업계에서의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고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정리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