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스RT는 잘 만들었는데 실패했나? 물론 그런 측면도 있기는 하다. 하드웨어적으로. 웬만한 안드로이드 태블릿에 비해 하드웨어 스펙은 더 좋다. 디자인도 그럴싸하고.
그걸 거꾸로 말하면, 서피스RT 디바이스에 안드로이드를 실어서 판매했더라면 의미있는 히트를 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럼 뭐가 문제인지는 바로 나온다. 그렇다. 서피스RT에 실린 윈도우RT가 문제의 핵심이다.
노키아의 루미아폰을 보자. 역시 하드웨어 스펙 좋다. 노키아의 하이엔드급 윈도우폰이 나올 때마다 항상 IT언론들의 주목은 제대로 받았다. 특히 카메라 기능은 발군이다. 디자인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루미아폰, 역시 나오는 족족 실패했다. 게다가 원래의 루미아 시리즈에 올려질 예정이었던 미고는, 노키아가 버린 것을 구멍가게 벤처에서 다시 출시해서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하드웨어 스펙 같은 건 무시하고도.
그럼 뭐가 문젠가. 윈도우RT와 마찬가지로, 역시 윈도우폰 OS가 문제인 거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유가 어쨌든 사용자들은 윈도우폰을 원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들은 통신사들과의 역학관계나, X박스 등 MS의 다른 제품들과의 시너지 효과 등등에 주목한다. 언론들은 그런 거 주목하는 게 일인가보다. 하지만 서피스나 루미아 모두, OS가 문제의 핵심이다.
서피스RT는 MS의 다른 제품들과 시너지 효과가 없어서 실패했나? WinRT라는 새로운 프레임워크까지 만들어 엄청난 투자를 해서 윈도우8과 앱을 공유하게까지 했다. 그런데 시장은 서피스RT를 외면하고 도리어 MS가 마케팅 노력을 그닥 들이지 않은 서피스 프로(윈도우8 기반)에 더 주목했고, 판매량도 훨씬 더 많이 했다.
루미아를 MS가 인수한다고 해도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MS는 윈도우폰을 위해 루미아를 인수하는 것이라, 윈도우폰을 벗어날 계획은 당연히 전혀 없기 때문이다. MS가 만약 윈도우폰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스마트폰 하드웨어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당장 루미아에 안드로이드를 얹어 판매하는 게 정답인데, 당연히 그럴 가능성은 0%.
윈도우폰의 문제는 무엇인가? 윈도우폰 자체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나? 아니다. 단지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다. IT엔지니어가 아닌 일반 사용자들은 뭔가 새로 배우는 거 일단 싫어한다. (사실은 IT엔지니어도 끝없이 새로 공부하는 거 싫어한다)
일반 사용자들의 뇌리속에 스마트폰이란 이미 아이폰 아니면 안드로이드다. 그런 체제가 몇년이나 지속됐다. 그 몇년은 MS가 이미 뒤집기가 거의 불가능한 세월이다. 게다가 그 체제가 퇴보중이면 몰라도, 이 2대 진영은 치열하게 서로 경쟁중이라 사용자들은 그 양대 강자들의 대전 관전에만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MS같은 스마트폰 마이너 벤더가 무슨 새로운 개념을 탑재했든 말았든 그건 관심사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대부분 사용자들에게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가 아닌 다른 무엇은 이미 뇌리속에 완전히 자리잡은 개념인, '스마트폰'이 아니거든! 블랙베리가 추락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이 사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완전히 새로운 UI'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사용법을 완전히 새로 공부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귀찮음인가!
삼성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핸들 대신 조이스틱으로 차를 조종하는 방식으로만 올인하고, 이게 더 편하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실제 더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웬만큼 더 편한 정도로는 바꾸는 게 싫단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동력방식인 전기자동차들도 억지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사용법을 따라가는 이유도 동일한 것이다.
새로 배우는 것을 즐기는 소수 엔지니어들은, 새로 배우기를 귀찮아하는 절대 다수 사용자들의 그 귀찮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귀찮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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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UI! 일자형 핸들은 원형 핸들보다 훨씬 돌리기도 쉬워~ 발은 전혀 안움직이고 손 조작만으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으니 다리는 운전 내내 편안히 쉴 수도 있어~ 등등 장점도 많겠지?
하지만 이 차는 안팔린다. 사용방법이 다르거든. 원점에서 똑같이 놓고 보자면, 원형 핸들보다 일자형 핸들이 불편한 점도 있겠고 장점도 여럿 있겠지만, 그걸 종합해서 장점이 더 많다고 해도, 누가 수십년 몸에 익은 원형 핸들 말고 일자핸들이 달린 차를 사겠어?
일자형 핸들이 달린 차가 더 연비가 좋다해도, 더 마력수가 높다고 해도, 팔리지 않는다. 물론 소수 마니아들은 그 일자형핸들을 떼내고 일반 원형핸들을 직접 장착해서 타는 사람도 있겠지? 그거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도 마찬가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평정한 스마트폰 시장의 지난 몇년이 그런 세월이다. 불과 몇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고. 이미 뒤집을 수가 없는. 한때 윈도우와 쌍벽이었던 IBM의 OS/2가 불과 1, 2년 지나자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것을 보라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IT 업계에서 일대 대변혁이 일어나는 짧은 시기는, 몇년이란 시간은 몇십년, 몇백년보다 더 긴 엄청난 장기간이다. 그게 바로 지난 몇년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