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개발자의 몸값을 올리는 10가지 방법" 이라는 컬럼이 열심히 공유되고 있길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도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좀 실망스럽게도 없다. 그래서 소개해보자.
해당 컬럼에서 소개하고 있는 '비법'들은 대부분 기술적 이슈 관련이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이렇게 기술적 역량이 높으면 회사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지금껏 개발자, 관리자로서 살아오면서 보기엔 그다지 상관관계가 높지 않았다. 대충 비유하자면, 일반적으로 기술적 레벨과 대우의 연관성이 90% 정도 될 것이라고 본다면, 내가 보기엔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은, 각 이슈들에 대한 책임과 보고다. 기술적 레벨의 고하와 무관하게 특정 이슈를 맡았을 때 가장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역량에서 무리없이 해낼 수 있는가, 무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렵다고 봐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기업을 기계처럼 운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해보겠습니다'라는 대답만큼 무책임한 것이 없다. 안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슈에는 시한이 있기 마련인데 피같은 시간을 소모하고 결과적으로 달성에 실패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따라서 무리이거나 어려운 경우 상급자에게 반드시 정확한 의사전달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슈를 담당해서 추진하는 중에도 수시로 상황을 적극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상황뿐만 아니라 예상과 달리 추가로 필요한 리소스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자금, 인력, 기술 등등.
이렇게 냉정하고 기민하게 업무를 진행하게 되면 상급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을 크게 줄일 수도 있고 더 큰 규모에서의 진행상황에 대해 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되고, 회사의 전체적 이익에 확실한 도움이 된다.
내가 개발자들을 팀원으로 데리고 일할 때 실력이 필요보다 모자라도 이런 판단과 보고가 빠르고 정확한 사람들은 높이 대우했고, 일단 해보지 뭐 하고 맡았다가 밍기적대는 사람들은 대우를 올려주지 않았었다. 전자는 내 일을 쉽게 해줬고 후자는 내 일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지만 일에 대한 판단과 보고가 빠르고 정확한 사람들은 안되면 사람을 더 붙여도 되고 하다못해 내가 직접 도와줘도 된다. 하지만 날고긴다는 실력자라고 해도 판단과 보고가 미흡한 사람은 업무에 그다지 큰 도움이 안된다.
실제로 자신의 실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고 나도 확실히 인정했던 사람이 업무에는 그닥 도움이 안되었거나 도리어 역효과를 내었던 케이스도 여럿 있었다. 실력이 곧 업무능력은 아니다.
반대편에서 생각하자면, 직원의 이런 면을 잘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관리자이자 경영자라고 본다. 말하자면, 실력의 고하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은 적절한 용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p.s. 해당 컬럼이 제일 우선으로 꼽고 있는 "최신 기술 동향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라는 소제목을 보고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내가 보기엔 이런 주장은 실제론 미신에 가깝다. 물론 최신기술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관념을 믿는 관리자에게는 더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미신을 믿는 사람들끼리는 귀신이 실제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끊임없이 신기술을 공부해야 한다면, 다시 말해 기술의 폭이 무한대로 계속 늘어나야 하는 건데. 그럼 깊이는 언제 갈고 닦나? 물론 개인의 기술습득 역량에 따라 개인적 편차는 있겠지만, 끝없이 신기술을 공부해대는 사람 치고 깊이 있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을 별로 못봤다.
물론 일정부분 맞기도 하지만, 사실 IT에서 '신기술'이란 것은 실질적인 효용 때문에 나온 것보다는 글로벌 벤더들의 마케팅 차원에서 나온 것이 훨씬 더 많다. 이런 것들 다수는 제대로 보편화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여러분이 '끝없이 마구마구 열심히 공부해온' 사람이라면, 자신이 공부했던 것들을 한번 되돌아보라. 그중 최소 절반 정도가 현재에 와서는 거의 쓰이지 않거나 아예 사장된 기술일 것이다.
IT 업계에서는 3~5년마다 트렌드가 뒤집어지니까 당연히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명제도 일정 부분 일리는 있지만 완전히 진실이냐 완전히 거짓이냐의 잣대에서 보자면 오히려 거짓 쪽에 가깝다. 3~5년마다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10년, 20년이 지나보면 실제로 완전히 바뀐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니까 3~5년마다 크게 바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과장된 착시다. 우리 업계의 누군가는 그런 착시를 일으켜서 돈을 벌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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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개발자들을 모셔와서 드림팀을 만들어놨는데 제품 개발에는 실패했다' 그런 사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이런 관련의 문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발자들의 실력이 중요하다고 맹신해버리면 프로젝트는 오히려 산으로 갈 확률이 더 높아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