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백만인 대회에는 광화문에만 무려 25만명이나 되는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습니다.
온라인에서 동영상으로 집회를 지켜본 45만명까지, 전국적으로 애초에 목표했던 1백만에 가까운 촛불들이
이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광화문에서는 인파가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부터 덕수궁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경찰의 방해로 주최측의 애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2시부터 주최측인 국민행동쪽에서
무대와 방송장비를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이 합의를 깨고 갑자기 고정식무대와 방송장비의 설치를 방해하고
장비를 실은 수십대의 차량을 견인해가버려, 행사를 시작했을 때 방송장비가 너무 모자라 비교적 앞쪽에
앉은 저도 행사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어제 집회에는 인기 가수들이 대거 자원하여 출연하여, 추가 장비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3부로 나뉘어 진행된
어제 행사에서 원래 계획은 각 부마다 가수들이 몇명씩 나와서 흥을 돋구기로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경찰이
압수해간 방송장비 등을 가져와서 설치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가수들의 무대는 3부까지의 원래
일정이 모두 끝난 후에야 마련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3부까지가 촛불집회이고 그 이후는 가수들의 조인트 콘서트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무대를
설치하고 장비를 점검하면서 행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중간중간 끊기거나 일정이 지연되게 되었고, 9시 30분에
마치기로 되어있었던 일정은 11시 45분이 되어서야 마침내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촛불을 든 시민들은 끈기있게 참아주었습니다. 아마도 앞쪽 1/3 이후에 계셨던 분들은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셨을텐데, 늦은 시간까지 남아 민주주의의 촛불을 지켜주셨습니다. 주최측에서도
늦어지는 이유가 경찰의 방해 때문임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사이에서 경찰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아마 사실대로 밝혔으면 어제 정도의 인원에서 도저히 통제가 안되었을 것이고,
폭력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간 터라, 배가 무지하게 고팠는데, 양쪽에 앉은 아가씨들이 교대로(?) 빵을 나누어주셔서
그럭저럭 허기는 채워가며 탄핵무효를 외쳤습니다.
아홉시 반 정도가 넘어가면서, 나이가 드신 분들을 포함해 적지 않은 분들이 귀갓길에 오르고, 10시가 좀 더
넘어서야 겨우 무대가 마련되어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BMK의 공연으로부터 시작된 가수들의 무대는
수십만명의 시민들로 완전히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뒤이어 블랙홀, 권진원, 신해철, 안치환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는데요. 일정이 너무 늦어져서, 가수가 원해도
시민들이 원해도 두곡 이상씩은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다시 한번 미워지더군요.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가수는 신해철과 안치환이었습니다. 신해철은 아시다시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외치는 의식있는 가수죠. 어제도 노래에 앞서 국회를 향해 독설을 퍼붓고 민주주의의
희망을 외쳐 시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안치환은 말할 것도 없지요. 안치환이 무대에 오르자
광화문 일대는 온통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주최측에서 깜짝 놀랄 인사로 숨겨두었던,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사람은, 정태춘과 박은옥이었습니다.
20여년간 이 거리를 지켜오신 분이라는 권해효씨의 설명처럼, 마지막 무대에 두사람이 오르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30대 이상이 아닌 분들은 정태춘과 박은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집회의 역사적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민주주의의 촛불을
밝히기 위해 참여한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희망을 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시간은 11시 45분이었습니다.
남아있던 10여만명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큰 혼잡 없이 질서있게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어제의 백만인 집회는,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됨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로, 광화문에, 전국 곳곳에, 세계 곳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한뜻으로
모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193명의 썩은 쓰레기들을 청소할 것으로 결의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을 쓸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헌법으로 규정된 국민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시민들이 17년만에 뭉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당이 집권하든 노무현이 자리를 되찾든 탄핵이 되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제 모였던 백만 국민들의
가슴속에 수십년만에 되살려진 진정한 민주주의의 촛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집회에 나갑니다. 4월 15일 총선일까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갈 생각입니다.
어제의 대규모 집회가 백수들의 야유회가 아니었음을, 콘서트가 아니었음을 한민자 쓰레기들이 깨닫도록,
4월 15일에 국민들로부터 퇴출 선언을 받은 후엔 완전히 물러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