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지나 운부암 가는길
능성재로 빠져 오르는 계곡 길 옆에
허물어져 가는 빈 집은 한때
세상을 등진 스님들 것이었다
아무도 따지 않은 산수유 열매가
검붉은 채 말라붙은 가지들을 헤집고 들어가
흐린 윤곽의 마당을 가로질러
허물어져 가는 안채의 뜨락 앞에 앉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던 자들의 번뇌를 되짚는다
이제, 세상을 등진 자들에게도 버림받은 채
조용히 푸석해져 가는 토방의 흙벽들
먼지 쌓인 채 나뒹구는 소박한 가재도구들
그 부장품副葬品들의 쓸쓸함이야말로
세상을 버리고, 세상에 버림받은 자들의
무덤과 닮아 있다
찌르레기들 한 떼 조릿대 덤불에서 날아 와
잡풀들로 지워진 마당의 가장자리를 기웃거리며
못다 한 소식들 있다는 듯 재재거리다가
노을 비낀 적송 숲 위로 떠올라 흩어진다
그 빈 집에서도 무너진 뜨락에 앉으면
으스름 저녁, 햇살을 비워버린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그 적멸寂滅, 또한 부서질 듯 아름답다.
- 엄 원 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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